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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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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 왕조 500여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상징 '경기전'
작성자 문화서적 (ip:)
  • 작성일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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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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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란 무엇인가?
이어령은 '역사란 흘러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괴어있는 시간, 미래를 향해 도리어 흘러 내려오는 그런 시간'이라고 말한다. 역사란 시간과 공간속에 머물러 있으되, 막히지 않고 두루 통(通)하여 눈과 귀가 열린 자에게 진리와 지혜, 용기를 전수하는 학습 공간이자 체험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릇 역사야 말로 살아있는 스승이며 진리의 보고(寶庫)이자 미래의 등불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전주 경기전은 조선 5백년 역사의 시작이자 민족의 기개가 펄펄 살아있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이며 우리 민족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도리어 흘러 내려오는 그런 시간'이다. 도심 속, 고즈넉한 유적지에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일까.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역사의 기운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자.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양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고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각각 칭하였다.경기전은 선조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6년(1614년)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신성함을 표시한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살문, 외신문, 내신문 그리고 어진을 모신 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왕실 사당임을 감안할 때 신문(神門)이라고 호칭되며 홍살물 안쪽 내·외신문의 세 문을 통과할 땐 '동입서출', 다시 말해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와야 한다. 가운데는 태조의 혼령이 드나드는 '신도'이기 때문이다.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전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439년(세종21년)의 일이다.

경내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경기전(유형문화재 제2호)과 그의 22대조이며 전주 이씨의 시조인 신라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 (肇慶廟·유형문화재 제16호)가 있다. 특히 태조 어진(국보 제317호)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왕조 어진들이 모셔진 어진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경기전 사진


경기전이 오랫동안 관광객과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도심속에 담긴 고풍스러운 모습과 우거진 수목 덕분이다. 경기전에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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